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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21일
창세기 12: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 그 분의 백성의 신음과 고통을 외면하실 수 없는 분이라는 것은 여러분도 인정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은 그 분의 백성을 안식의 땅, 약속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실 계획을 실행 하셨습니다. 이 일을 실행하시기 위해 그 분의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시는데 그 사람이 바로 아브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택하시고 그에게 보여주실 땅을 위해 그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길을 나섰고 그 땅에 다다른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보이는 그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 13:14~17 14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17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처음 약속하신 것이 땅인 이유는 땅은 저주로부터 해방되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아직 땅으로부터 안식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의 타락 후 다시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사람을 다시 인도하실 분명한 목적이 있으셨습니다. 그 첫 행보가 약속의 땅으로의 인도인 것입니다.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개명하시고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리라 하신 후 할례를 언약의 징표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을 유업을 이을 적자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삭에게도 땅을 약속으로 주시고 그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도 그 후손이 안식할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이 죽고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의 종으로 430년을 고통당한 후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셔서 그 약속을 이행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1~8 1모세가 그의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더니 그 떼를 광야 서쪽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2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 안에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니 그 때에 4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6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매 7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 8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이처럼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신 이유는 출애굽기 6장 5절에 기록된 대로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가 하나님께 들렸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하신 언약을 기억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애굽으로 갔고 그곳에서 애굽의 왕 바로 앞에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계획과 말씀을 선포했으며 이스라엘 백성을 고통으로부터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의 긴 여정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이스라엘 백성이 지켜야 할 율법을 주셨습니다. 또한 성막과 제사장의 직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명령하시고 그 명령을 지킬 것을 또한 명령하셨습니다. 이때 거룩한 땅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레위기 19장 23절에서 25절을 보면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 각종 과일 나무를 심거든 그 열매는 하나님께서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시기 때문에 먹지 말고 넷째 해의 모든 과실은 거룩하므로 여호와께 드리고 다섯째 해부터 그 땅에서 나오는 과실은 백성들이 먹을 수 있다’ 하셨습니다. 이런 명령을 하신 이유는 이렇게 해야 이스라엘의 소산이 풍족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땅을 주시고 할례를 통해 언약의 징표를 삼으시며 거룩하게 하시는 이유는 땅의 소산을 풍성케 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풍족한 식량과 안식을 얻게 하려 하심 입니다(시4:7, 시5:7, 시37:11, 시107:37, 사30:23, 사66:11, 겔32:15, 겔36:29~30, 호14:7, 합1:16). 신명기 7:13 곧 너를 사랑하시고 복을 주사 너를 번성하게 하시되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 소생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네 토지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풍성하게 하시고 네 소와 양을 번식하게 하시리니 2009년 07월 21일
창세기 5: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하나님은 아담의 후손에게 저주받은 땅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얻은 사람이 사단의 종으로 그 삶을 마감하도록 놓아두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노아Noah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창세기 5장 28절과 29절을 보면 노아는 라멕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아담의 9대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이름은 안위 또는 안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저주받은 땅에서 수고롭게 일하는 사람에게 안식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약속과 소망인 것입니다.
노아 홍수의 원인은 사람의 타락입니다. 하지만 앞서 본 것처럼 이 사람의 타락은 6장 11절의 말씀처럼 땅이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땅의 부패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부패와 사람의 타락을 동일하게 보시고 계십니다. 이 땅과 사람들의 부패와 타락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시고 노아와 그 가족을 제외한 모든 기식있는 사람과 생물들을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방주를 만들고 40일 동안 내리는 홍수심판에 대비하였습니다.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40주야동안 내린 후 150일 동안 땅을 덮었습니다(창7:24). 심판에서 살아남은 노아와 그 가족이 방주에서 나온 후 노아는 재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고(창8:20) 그 제물의 향기를 받으신 하나님은 땅의 저주를 거두시리라 다짐하셨습니다. 이유는 사람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사람의 악함으로 인해 땅을 저주하시면 땅은 영원히 저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땅의 저주를 안 푸실 수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땅의 저주를 안 푸시면 사람도 그 저주로부터 푸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일단 땅은 저주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해방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사람이 해방될 차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저주를 푸신 것처럼 사람의 고통도 해결해 주실 방법을 마련하셨습니다. 2009년 07월 20일
창세기 3:17~19 17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열매 를 먹은 여자와 남자 그리고 그 열매를 먹도록 종용한 뱀은 각각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게 됩니다. 여자는 해산의 고통을, 뱀은 배로 다니고 흙을 먹는 저주를 받게 되고 남자는 먹을 것이 풍족한 에덴동산을 떠나 가시나무와 엉겅퀴가 나는 땅에서 힘들게 노동을 해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는 고통의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몇 가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분의 피조물을 대하시는 방법과 순서입니다. 선악과를 먹고 난 후 남자와 여자는 하나님의 눈을 피해 숨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조물을 부르시는데 하나님께서는 여자도 뱀도 아닌 아담을 부르시고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은 이유와 책임을 물으셨습니다. 아담은 자신에게 선악과를 준 여자에게 그 책임을 떠넘겼고 여자는 자신을 꼬여 금단의 열매를 먹도록 부추긴 뱀에게 그 책임을 다시 전가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만 그 이유를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뱀에게는 그 이유를 묻지도 않으시고 저주하셨습니다. 그만큼 뱀 즉, 사단은 하나님과 인격적 대화의 대상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뱀을 저주하신 후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선악과를 준 여자를 저주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 둘 즉, 뱀과 여자는 직접적인 저주 다시 말해서 자신이 직접 저주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배로 다니며 흙을 먹고, 임신과 해산의 고통을 당한다는 것은 잘못한 일의 책임을 자신이 직접 당하고 감수함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남자의 경우에는 전혀 저주의 방식이 달랐습니다. 남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적인 저주를 받지 않습니다. 대신 땅이 받은 저주 즉, 하나님께서 남자대신 땅을 저주하시므로 땅으로부터 오는 간접적인 저주를 남자가 감수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남자의 대표성을 인정하시기 때문에 발생하게 된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를 이 천지의 대표로 세우시고 모든 피조물의 머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19절에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피조물들의 이름을 짓도록 하신 사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타락의 잘못은 뱀과 여자에게 있지만 그 책임은 피조물의 대표자인 아담에게 있고, 남자로 인하여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이 저주를 받아 고통에 처하게 되는 것입니다. 남자가 땅의 흙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이런 대표성을 남자에게 부여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타락 즉,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땅은 저주를 받고 땅은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실 때의 모습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4장의 가인과 아벨의 제사는 땅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을 제공합니다. 창세기 4:3~12 3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가인과 아벨의 제사 중 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받으셨는지에 대한 성경학자들의 주장은 다양합니다. 그 중 가장 정확하고 명료한 해석은 가인이 저주받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앞선 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땅을 저주하셨고 가인이 그 저주받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그 제물을 안 받으신게 아니라 받으실 수 없다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저주하신 대상의 재물을 받으신다는 것은 하나님으로서는 용납하실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땅은 철저히 하나님으로부터 유기되어 버림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땅의 유기는 보이는 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우리는 앞서 아담이 땅의 흙으로 지음 받았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땅의 의미가 아담 즉, 사람을 의미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장 19절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명하여 설명하시기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는 말씀이 이것을 뒷받침합니다. 따라서 땅의 저주와 유기는 사람의 저주와 유기인 것입니다. 실제로 사람은 저주를 받았고 에덴동산으로부터 유기되었습니다. 이 사람의 저주는 땅이 사람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그와 같은 악한 생각과 말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실 때의 말씀입니다. 창세기 3장 14~15 14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15절의 말씀에 대한 해석은 여자의 후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주신다는 약속이며 사단의 세력과 교회의 대결, 그리고 그 전쟁에서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여자의 후손이라 지칭하신 하나님의 의도는 땅의 저주로 남자가 저주를 받게 되었으므로 남자의 씨로 잉태된, 다시 말해 땅에 속한 후손이 아닌 동정녀의 후손으로 그리스도를 보내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저주가운데 태어나실 수 없다는 점에서 당연해 보입니다. 이런 동정녀 탄생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여자가 흙으로부터 창조되지 않고 남자의 갈비대로부터 만들어졌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대신 그리스도는 반드시 남자여야 합니다. 그 이유는 남자가 피조물의 대표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지만 남자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앞의 구절에 있습니다. 앞선 14절을 보면 뱀이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라는 저주가 나옵니다. 이 말은 흙인 사람이 사단의 양식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에게 땀을 흘려 수고해야만 식량을 얻게 되리라는 저주는 이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에덴동산에서 유기되어 저주받은 땅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사단의 종으로 그 신분이 전락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사단의 먹잇감, 뱀의 양식으로 신분이 곤두박질친 저주는 그 어떤 저주와도 비교할 수도 없는 저주인 것입니다. 앞서 저주의 순서가 뱀이 처음이라고 했지만 이것으로 보건데 저주의 첫 대상은 분명히 남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저주하시며 피조물의 대표로 세우신 남자의 책임을 간과하지 않으시고 저주의 순서가 맨 처음 남자에게 돌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저는 창세기 3장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얼마나 존중하셨고 얼마나 많은 기대를 하셨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셨을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의 대표이기 때문에 가장 먼저 저주하실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의 마음을 말입니다. 2009년 07월 19일
이 성경이 증거하는 온전한 사람의 완성은 안식이라는 목적안에 있고 이 안식은 안식의 땅에서 완성됩니다. 그래서 믿는 우리들은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가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땅이 가지는 의미가 굉장히 큽니다. 창세기는 사람이 안식의 땅으로부터 유기되어 땅이 더 이상 안식을 제공하지 않고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는 고난과 고통의 땅에서 다시 그 안식의 땅을 약속받고 그 땅으로 가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와 여호수아서는 실재로 그 안식의 땅을 향해 가는 여정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 만큼 성경에서 땅은 그 의미하는 바가 큽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 이 땅의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땅의 흙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땅에 비유하여 설명하시겠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즉, 사람이 땅을 의미하고 땅이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후 하나님께서 뱀과 여자와 남자를 저주하시는데 남자를 저주하실 때 직접적으로 남자를 저주하지 않으시고 땅을 저주하셨습니다. 여자는 직접적으로 해산의 고통을 부여하셨지만 남자는 땅을 저주하시므로 땅에 의해 고통을 받는 간접적 고통을 부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저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땅의 회복과 약속의 땅에서의 안식을 약속받습니다. 따라서 성경 전체의 주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의 타락과 땅의 저주, 그로인한 안식의 상실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안식의 땅에 대한 약속과 사람의 회복, 하나님의 형상의 완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성경의 주제를 인지하고 성경을 접할 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과 그 사랑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희생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2009년 07월 18일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조의 사건 중에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앞서 살펴본바와 같이 창조의 목적이 안식이라는 것과 인간창조의 재료가 신령한 영적 재료가 아니라 땅의 흙이라는 점입니다.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께서는 생기를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셔서 사람을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생령이라는 단어는 ‘살아 있는 넋’이라는 뜻으로 ‘생명’을 이르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때의 생명은 하나님의 본질적인 생명과는 다릅니다. 만약 이 ‘생령’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의 본질적 생명이라면 그 생명을 받은 사람의 타락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은 결과적으로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불어넣어주신 생기가 하나님의 본질적 생명이라면 하나님의 완전한 생명력도 사람의 타락을 막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낳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과연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 없겠죠? 그런데 이것보다 더 무서운 논리적 결론은 하나님의 완전한 생명력이 사람의 타락을 막을 수 없다면 하나님의 타락이라는 가능성을 낳을 수 있게 되므로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것으로 아담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생명으로 완전하게 창조되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아담이 완전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이 이 처럼 무서운 논리적 오류를 낳게 됩니다. 창세기 1장 26과 27절의 말씀을 통해서도 아담이 완전한 피조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 즉, 하나님의 모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모양이라는 것은 형체를 의미하는 것이지 ‘모든 부분이 완벽히 하나님과 같다’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27절의 말씀 중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는 구절을 보면 ‘창조하시되’라는 구절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되’라는 단어는 ‘~했지만’이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는 하셨지만 남자와 여자로 구분하셨다고 해석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창조 당시의 사람이 완벽한 하나님의 형상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증거합니다. 만약 사람이 완벽히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6절에서 9절을 보면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결혼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시는 부분인 동시에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형상이 완성된다는 것을 설명하시는 구절입니다. 그만큼 창조 당시에 사람의 본질이 완벽히 하나님을 닮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아담이 단순히 하나님의 형상 즉, 본질이 아닌 모양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동산 중앙의 생명나무를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가 하나님의 본질적 생명이라면 왜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를 놓으셨느냐는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생기를 넣으셔서 생령이 된 것으로 모든 것이 완성이 되었다면 왜 굳이 하나님께서는 동산 중앙에 생명나무를 만들어 놓으셨을까요? 이것은 생령이 된 것으로는 인간 창조가 완료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양은 단순히 모양이지 본질은 아닙니다. 우리는 창세기 즉, 성경의 서론에서 이 부분을 정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성경의 첫 장과 둘째장 그리고 세 번째 장은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이고 성경의 마지막 장은 완성된 인간의 모습을 설명한다는 것을 알아야 성경전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을 보십시오. 계시록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구체적으로 9절부터 새 예루살렘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9절을 자세히 보면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라는 구절을 통해 묘사되는 대상이 신부 즉, 어린양의 아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10절은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라고 기록하시면서 보여주시고 묘사하시려고 하는 대상이 신부이며 이 신부가 거룩한 성 예루살렘임을 증거하십니다. 여기의 신부가 누구인가요? 이는 곧 교회이며 믿는 성도를 의미합니다. 즉, 완벽한 사람의 모습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 전체는 우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따라 온전한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는가를 설명하고 알려주는 책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한 성경인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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